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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무엇을 했나”…추석에 펼쳐볼 신간 5권
철학·산문부터 한국소설·세계문학까지 시간과 관계, 삶의 의미 되짚어볼 신간 5권
무더웠던 여름을 지나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오면 어쩐지 마음이 헛헛하다. 한 해가 거의 다 간 것 같은 기분에 ‘올해 나는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게 된다. 바쁜 일상에서는 책 한 권을 온전히 읽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읽고 싶었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도 몇 장 넘기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모처럼 긴 연휴가 찾아오는 추석은 미뤄뒀던 독서를 시작하기 좋은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고 남은 시간, 지나온 삶과 관계를 돌아보거나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올 추석, 독자들의 마음을 채워줄 책 5권을 소개한다.
“바쁘게 살았는데 산 것 같지 않다면”…세네카가 건네는 2000년 전 처방전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는 로마 제정기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대화편 다섯 편에서 핵심 사유를 선별해 55편의 짧은 글로 재구성한 편역서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고문으로 제국의 운명을 좌우했던 세네카는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면서도 시간의 본질을 고민했다. 책은 세네카의 사유를 통해 현대인이 무심코 흘려보내는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나중에’라는 말에 미뤄둔 일, 쉬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태도, 남들과 비교하며 쌓이는 불만 등을 짚으며 결국 시간을 되찾는 일이 자신을 되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책은 55편의 짧은 글로 구성돼 있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긴 연휴 동안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하루에 몇 편씩 천천히 읽기에 적합하다. 모처럼 생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독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가족을 만나는 명절, ‘가족 아닌 사람’까지 바라보게 하는 소설
정지아 작가의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찌니주의보'는 추석이라는 명절의 의미와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4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정지아는 이번 작품에서 평균 연령 78세인 산골 마을 ‘수평마을’을 무대로 삼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마을에서 부딪히고 밥을 나누며 이웃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토박이와 귀촌인, 한국인과 이주여성, 도시의 젊은이와 농촌의 노인 등 작품 속 인물들은 살아온 환경도 가치관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서로를 흉보고 싸우는 과정에서 조금씩 상대를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간다.
명절은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찌니주의보》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넘어 낯선 사람과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추석에 읽어볼 만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김애란이 기록한 우리의 오늘
김애란 작가의 7년 만의 신작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한 해를 돌아보는 독자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다. 최근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 허구의 세계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온 김애란은 이번에는 자신의 목소리로 일상과 창작, 인간관계, 사회를 돌아본다.
제주에서 마주한 풍경부터 오랫동안 오해했던 사람을 새롭게 바라본 경험, 인공지능의 등장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 코로나19를 지나며 다시 생각하게 된 자립과 타인의 의미까지 소재도 다양하다.
특히 책을 관통하는 것은 ‘내가 되지 않는 꿈’이라는 생각이다. 김애란은 완벽하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경계를 조금씩 열어두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추석 연휴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에 좋은 시기다. 올해 무엇을 했는지 성과를 따지는 대신,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무엇을 경험했는지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다…조정래 3년 만의 신작 '서리꽃'
조정래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서리꽃'은 사랑을 통해 인간의 삶과 관계를 들여다본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한국 현대사를 다뤄온 조정래는 이번 작품에서 스마트폰 하나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만나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작품은 마음을 나눴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이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면서 사랑과 선택, 삶의 의미를 되짚게 한다.
빠르게 연결되고 쉽게 소비되는 관계에 익숙해진 시대다. 추석 연휴 동안 잠시 휴대전화와 일상에서 거리를 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미리 보는 노벨문학상 후보작, 찬쉐 '오향거리'…낯선 세계문학의 문을 열다
추석 연휴를 활용해 평소 쉽게 접하지 못했던 세계문학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찬쉐의 '오향거리'는 오향거리에 새로 이사 온 자유분방하고 비밀스러운 X여사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거리의 주민들은 X여사의 나이와 과거, 생활습관 등을 끊임없이 추측한다. 급기야 특정 인물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주민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파고든다. 하지만 X여사를 둘러싼 추측이 이어질수록 그의 정체는 더욱 묘연해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 집단의 시선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찬쉐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 작가로 주목받아왔다.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작품을 미리 읽어보는 것은 독서의 또 다른 재미다. 추석이라는 긴 연휴를 활용해 국내 문학을 넘어 낯선 문학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는 것도 좋다.
긴 연휴라고 해서 반드시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미뤄뒀던 책을 펼치고 몇 시간 동안 문장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일상과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올해 추석에는 책 한 권과 함께 잠시 걸음을 늦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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