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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가뭄’ 맞은 리가켐바이오…오리온 5500억 투자의 ‘시험대’
2024년 오노약품 이후 신규 글로벌 빅딜 공백 中 바이오텍 급부상에 ADC 기술수출 경쟁 격화 2년간 약 6800억원 베팅한 오리온도 성과 주시

국내 대표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업 리가켐바이오의 기술수출 공백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10건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며 누적 계약 규모 약 10조원을 기록했고 2024년에는 오리온이 약 5500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일본 오노약품공업과의 계약을 끝으로 약 2년간 신규 글로벌 기술수출이 없다.
그 사이 중국 바이오기업이 빠른 임상 개발을 앞세워 글로벌 빅파마의 주요 파트너로 부상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ADC 시장은 플랫폼 기술뿐 아니라 차별화된 후보물질과 임상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졌다.
리가켐바이오는 달라진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기술수출 파이프라인의 임상 성과와 ‘LCB 2.0’ 전략을 돌파구로 내세웠다. 이를 통해 향후 5년 내 계열 내 최고(Best-in-class)·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ADC 파이프라인 20개를 확보하고 차세대 기술과 신규 모달리티(치료접근법)로 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 암젠·2023년 얀센·2024년 오노약품…매년 이어지던 ‘빅딜 시계’ 멈췄다
리가켐바이오는 2015년 첫 기술수출 이후 10건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고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기술수출 성과를 냈다. 계약 상대도 글로벌 빅파마다. 2022년 암젠과 최대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ADC 플랫폼 이전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2023년에는 얀센과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TROP2 ADC ‘LCB84’ 계약을 성사시켰다. 2024년에는 일본 오노약품과 LCB97 및 ADC 플랫폼 관련 계약을 맺었다.
특히 오노약품과 계약은 의미가 컸다. LCB97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넘기는 에셋 딜과 자체 ADC 플랫폼 ‘콘쥬올(ConjuAll)’을 활용한 후보물질 발굴·개발 계약을 동시에 체결했다. LCB97 계약만 최대 7억달러(약 9500억원) 규모였고 플랫폼 계약의 조건은 별도로 설정됐다.
무엇보다 오리온이 리가켐바이오의 최대주주가 된 이후 나온 첫 글로벌 기술수출이었다. 그러나 이후 흐름은 달라졌다. 2025년을 지나 2026년 9월 현재까지 공개된 계약을 기준으로 오노약품 이후 새로운 글로벌 대형 기술수출은 나오지 않았다. 기존 기술이전 파이프라인에서 마일스톤이 유입되고 신규 항체·기술 도입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기술수출 성과를 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리가켐바이오가 지난 10여 년간 10건이 넘는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대표 ADC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 잡은 만큼 시장에서는 약 2년간 이어진 신규 기술수출 공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서워진 중국 ADC…‘좋은 기술’ 넘어 임상 데이터로 승부
리가켐바이오의 기술수출 공백은 중국 바이오산업의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글로벌 ADC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특히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개발한 ADC와 이중항체 ADC 후보물질이 잇따라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되면서 글로벌 신약 라이선싱 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변했다.
실제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계약은 빠르게 늘고 있다. Nature에 따르면 중국에서 개발된 자산의 라이선싱 계약 가치는 2020년 약 50억달러(약 6조원)에서 2024년 500억달러(약 67조원) 이상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낮은 개발비와 빠른 임상 속도를 바탕으로 혁신신약 글로벌 임상시험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5%에서 2025년 30%로 확대됐다. 현재 글로벌에서 개발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달한다.
ADC 분야도 마찬가지다. 회사 측에 따르면 중국 ADC 기술이전 규모는 2015년 10억달러(약 1조원)에서 2025년 245억달러(약 33조원)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계약 건수도 10건에서 53건으로 늘었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ADC 기술과 파이프라인을 확보할 선택지가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셈이다. 중국 바이오 기업이 빠르게 초기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 후보물질을 검증하고 글로벌 제약사가 이를 도입해 후기 임상과 상업화를 이어가는 방식의 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ADC 기술 자체가 빠르게 발전한 점도 리가켐바이오에는 부담이다. 시장 초기에는 우수한 링커와 페이로드 기술을 갖춘 플랫폼 자체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플랫폼 기술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기전의 페이로드와 차세대 링커, 이중 페이로드 등 기술 경쟁이 심화된 데다 효능과 안전성, 경쟁약 대비 차별성을 보여주는 임상 데이터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리가켐바이오 역시 후보물질의 임상 성과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 ADC 업계 관계자는 “ADC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과거 경쟁력을 가졌던 리가켐바이오의 기술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졌다”며 “새로운 기전의 페이로드가 등장하고 중국에서도 단기간에 임상 데이터가 쏟아지면서 경쟁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ADC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다음 도약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 역시 중국의 부상이 기술수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임상 데이터가 확보된 파이프라인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지만 리가켐바이오는 과거 자금 문제 등으로 자체 임상 파이프라인을 공격적으로 확대하지 못했다”며 “반면 중국 기업들은 다수의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확보해 빅파마의 기술 도입 부담을 낮췄다. 이 같은 시장 변화와 자체 임상 파이프라인 부족 등이 신규 기술이전 공백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가켐, ‘ConjuAll’ 고도화·임상 성과로 승부…오리온은 6800억 투자 시험대
리가켐바이오의 성과는 최대주주 오리온과도 연관돼 있다. 오리온은 2024년 당시 약 5500억원을 투자해 리가켐바이오 지분 25.73%를 확보했다. 식품과 바이오를 양대 성장축으로 육성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였다. 최근에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125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중심에는 오리온 오너 3세 담서원 부사장이 있다. 담 부사장은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 4명 중 3명은 오리온 측 인사다. 기술수출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연구개발과 파이프라인 확대가 신규 기술수출과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입증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오리온 측의 경영 관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향후 리가켐바이오의 성과는 오리온의 바이오 투자뿐 아니라 담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오리온의 투자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리가켐바이오의 기술 경쟁력과 임상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리가켐바이오는 ConjuAll 플랫폼 고도화와 기존 기술수출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전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7월 열린 R&D 데이에서는 ‘LCB 2.0’ 전략을 공개하며 신규 페이로드와 차세대 링커, 듀얼 페이로드 등을 적용해 기존 치료제의 내성을 극복하고 차별화된 ADC를 확보할 것이고 밝혔다.
기존 파이프라인의 임상 성과도 중요하다. HER2 ADC인 LCB14를 비롯해 ROR1, TROP2, B7-H4 등을 표적하는 ADC가 파트너사를 통해 개발되고 있다. 이들 후보물질이 임상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면 개별 파이프라인뿐 아니라 ConjuAll 플랫폼의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차세대 기술의 경쟁력과 기존 파이프라인의 임상 데이터가 향후 신규 기술수출을 좌우할 전망이다.
또 다른 ADC 업계 관계자는 “이중 페이로드나 새로운 링커 등 차세대 기술이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리가켐바이오가 외부에서 항체를 도입하는 것도 경쟁이 치열한 기존 표적보다 차별화된 항체를 확보해 시장성이 높은 영역에 진입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결국 자체 파이프라인의 임상 결과가 향후 경쟁력을 가를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는 과거의 기술수출 성과를 넘어 중국까지 가세한 새로운 경쟁 구도에서 다시 글로벌 빅파마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오리온 역시 약 68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리가켐바이오의 기술수출과 기업가치 상승으로 연결해 바이오가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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