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갑을이 부도나던 시기의 실화수기 제1화 - 갑을주주동호회, 소액주주 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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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母邪의謀邪

갑을이 부도나던 시기의  실화수기제1화

점심을 먹고 누웠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발코니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소리라고 생각한다, 창문을 닫을까하다 삭신이 욱신거리고 엉덩이가 천근만근이라 잠잠 있는데 누군가 중얼거린다. 두 귀를 쫑긋 모으니 서너 살 먹은 사내아이소리다.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하며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분명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방문을 열고 거실을 두리번거렸지만 설렁하다. 현관문을 잠갔는데 사람이 들어올리 없지, 생각하며 방문을 닫으려다 문득 현관 옆 작은방에 누군가 있을 것 같다는 영감이 온다. 나는 거실을 지나 현관 옆 작은 방문을 열었다.
“어?”
방문을 열어본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방안엔 서너 살 먹은 사내아이가 문을 여는 나를 멀거니 올려다본다. 둥그런 얼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다. 아이주위엔 자동차며 비행기 딸랑 이등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야? 니가 시방 누구여?”
아이는 멀거니 고개를 쳐들고 두 눈만 끔뻑거린다. 아이의 입가엔 침이 흘러 촉촉하다.
“야 일마......,너 시방 누구냐구? 니가 우찌 나 집에 들어왔냐구?”
“여기 우리 집이야.”
기가 막힌다. 아이라고 하기엔 당당하고 당돌한 말이다.
“뭐시여? 느네집야? 일마 여근 나 집이여.”
“아냐. 우리 집이야. 엄마가 우리 집이라고 했어.”
“느네 엄마 워디 있는디?”
“엄마 짐 가지러갔어. 이삿짐. 우리오늘 이사와.”
이 아이가 벼룩의 간을 빼먹고왔나? 어디서 개밥에 도토리처럼 돼지발톱 불거지듯 톡 불거지는 거야? 혹시 내가 술 마시고 몸 섞은 과부래도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일은 없다. 술김에 다방이나 술집 여자를 불러 거시기 한건더기도 없다. 또한 나는 배를 곯아도 아무 곳이나 코 박는 사람이 아니다. 여자의 보물을 구경한지도 몇 년인지 모른다. 죽으면 사리가 나올게 분명하다. 여자의 보물이 엉덩이에 달렸는지 허벅지에 붙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그렇다고 아는 유부녀 한 명 없는데 이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문득 스치는 일이 있다. 두 달 전 하룻밤 자고 간 여인이다. 그때 나는 집 앞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옆자리에서 서너 살 사내아이와 밥을 먹던 서른 중반쯤 되는 여인이
“아저씨 혹시 이 근방에 싸구려 가게 나온 거 없어요?”
“싸구려 가게요? 멋하시게요?”
내말에 한동안 밍그적 거리던 여인은
“저는 수원에서 목회하는 전도산데요. 교인들이 대부분 장애인이나 노숙자들이거든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그러면 자립심도 커질 것 같아 이사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IMF의 후휴증이 가시지 않은 때다. 나 역시 부도 맞고 노숙자 될 뻔한 일이 있었기에 전도사가 퍽이나 고마웠다. 나는 전도사를 하룻밤 재워주고 음식대접도 해주며 전도사와 함께 싸구려 집을 찾으러 다닌 일이 있었다. 그 후 전도사는 종종 나에게 전화하여 그때일이 고맙다고 치사를 하다 잠잠했는데......,그런데 그  전도사가 이사 온단 말인가? 그럴 리 없는데? 내가 그 여인과 한 지붕 속에 잠 잔적은 있지만 한 이불 덮어본 사실 없고, 한 밥상에서 아침 먹은 사실은 있지만 전도사의 꿀단지 속에 코 박고 목축인 사실 없고,  아이의 손을 만져본 사실은 있지만 전도사 젖 한번 만져본 사실 없는데, 어찌 하룻밤 잠잤다고 내말도 안 들어보고 덜렁 이사 온단 말인가. 하룻밤에도 만리장성 쌓는다는 뜻이란 배꼽 맞추고 자궁에다 연비래도 새긴 연후에 하는 말이다. 나랑 잠자면서 내 고추에 쭈쭈한번 해주지 않고, 하룻밤 날밤 세며 징개 징개 잼 잼 하는 추억하나 없이 경솔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뽀뽀한번 아니하고 이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하며 어안이 벙벙하여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떴다.

생시(生時) 같은 꿈이다. 아니 이건 꿈이 아니다. 내 영이 비몽사몽 유체이탈 하여 작은방에 있는 동자귀(童子鬼) 의 영체(靈體) 를 본거다.
나는 생시처럼 생생한 꿈에 전도사 아주머니가 아이를 두고 이삿짐 가지려 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안방 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현관 옆 작은 방문을 열었다.

이집은 3층 빌라로(이글도 그 집에서 쓴다) 공사 금 대신 대물(代物) 로 받아 병원 원장(을지의원) 에게 전세 주었던 집이다. 건축주가 이중매매 한 것을 피고름 나는 투쟁 끝에 재판하여 되찾아와 살고 있었다. 전세금도 빼주었다. 외상값, 술값, 못다 준 노임 등 대추나무 대추 열리듯 주렁주렁 진 빚도 갚았다. 빙초산으로 껍질을 벗겨 버린다고 부르르 떨던 호텔 공사금은 채권을 양도한 후, 나머지 공사금은 물론 소송비와 압류비용까지 받았다. 농협에 진 채무도 얼마간 있었지만 농가부채 경감 혜택을 준다고 하여 이자만 물었다. 그렇게 피고름 나는 재판 끝에 빼앗긴 집도 되찾고 전세금을 빼준 후 두 평도 안 되는 개 마구 같은 월세방에 살다 왕궁 같은 내 집으로 이사하니 눈알이 빙빙 돌았다.

이곳이 내가 몸을 뉘고 쉴 내 집이다. TV팔고, 냉장고팔고, 세탁기팔고, 자동차 팔아가며 치료받지 못해 골수염 생기려는 다리로 쩔뚝거리며 재판 다닐 때와는 천당과 지옥이다. 영락없이 길거리에 내몰려 노숙자 될 처지였는데 기적적으로 장송곡이 행진곡으로 뒤집어진 것이다. 선경과 헤어진 오년......,나는 오년 동안 백 열 아홉 건의(119건) 의 민 형사 소송과 진정사건에 투쟁하여 승소한 것이다.

그렇게 이사하여 살던 어느 날 찾아온 동자귀다. 이건 꿈이 아니다. 내영이 비몽사몽 유체이탈 하여 영체를 본거다. 내가 고통당할 땐 잠잠하던 귀신들이 좋은 집에 이사하여 살만하니 질투 나서 나타난 것이다.

동자귀의 영체를 보고난 후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었다. 심연(深淵) 속 깊숙이 잠자던 아픔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내 눈에선 눈물이 폭포처럼 솟구쳐 나왔다.

새집에 사는 것이 두 눈이 뒤집어져 찾아왔단 말인가. 배가아파 또 왔단 말인가. 좋은 집에 산다 해도 자식하나 키우지 못하고 마주보고 누르는 마누라 하나 없는데 무엇이 질투 나서 나타났단 말인가. 일평생 내 영혼을 망치고 내 가정 망치고 내 모든 것 빼앗아놓고 무엇이 먹을 게 있어 기웃거린단 말인가. 하나님 난 저주받은 인간인가요. 증오의 자식인가요. 한달이 크면 한달은 적습니다. 비 오는 날 있음 햇볕 뜨는 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요. 내가 모르모토 입니까? 실험실 속의 쥐새끼 인가요? 사단과 내기하나요? 내가 죽는지 아니 죽는지 내기하고 있습니까?

피 칼 갈아 재판에 승소하여 빼앗긴 집 되찾아 살만하니 나타나 내 영혼을 허물 것이라 생각하니 원통한 생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이 뺨을 타고 줄 줄줄 흘러 성경책을 적시더니 방바닥으로 흘렀다. 눈물과 콧물에 범벅된 얼굴은 카레담긴 접시에 코 박은 것처럼 엉망이다. 나는 통곡소리가 새어나갈까 입을 막았다. 세상에 태어나 그토록 울어본 기억이 없다. 한동안 울다보니 온몸이 나른하다. 거실에 나와 소파에 몸을 묻었는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얼핏 바라보니 현관 앞에서 할아버지가 양파자루처럼 생긴 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수염이 치렁치렁한 노인이다. 나는 무심코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자루를 받았다. 자루 속엔 실뱀 한 마리가 꿈틀거린다. 약지손가락 반 정도의 굵기에 한자는 됨직한 잿빛 실뱀이다.
“할아버지. 이건 웬 뱀이에요?”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까지 서있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할아버지네? 어디로 가셨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루속의 실뱀을 바라보다 눈을 떴다.
생시 같은 꿈이다.
문득 내입에선 야릇한 신음이나온다.
“음, 그 실뱀이 아이를 죽인 범인이었다니. 그놈이 일평생 나를 따라다닌 귀신이라니.....,”

괴이한 일이 있었다.
이혼하기 전 이집에 이사하려고 할 때 어머니 누나 여동생 아내까지 줄줄이 무당집에서 점을 본다. 사주를 본다. 별짓 다한 모양이다. 농촌의 개 마구 같은 빈집에 살다 왕궁 같은 새집에 이사한다니 믿기지 않는가보다. 보리밥 먹던 놈이 쌀밥 먹으면 창자가 뒤틀려 죽는다고 무당집에 다녀온 그들은 무릎맞춤 한 것처럼 하나같이 새집에 이사하면 선경이가 죽는다고 한다. 그 중 나의 어머니의 반대는 도를 넘고 있었다.
“절대 안 돼. 그기 가면 니가 죽던지 선경이 죽어. 나직이고 싶으면 이사가라 잉. 그기는 절대루 안댄다 잉.”
서울 사는 누나와 안산 사는 여동생도 이사하면 성경이가 죽는다고 전화한다. 급기야 아내도
“나도 점집에서 물었는데 선경이가 죽는다네, 서울 친정어머니도 점쟁이한테 물어보았다는데 그리 말하더라고 하데.”
나는 선경이가 죽는다 해도 나의 신념을 꺾을 사람이 아니다. 아부라함이 이삭을 재단에 바쳤듯 귀신이 선경을 죽인다 해도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는 분명 그 집에 이사했을 것이다.
이사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IMF라는 걸귀가 때 뭉쳐 몰려와 모든 현장이 어려운 상태였기에 을지의원 원장에게 전세 주었다.

원장에게는 선경과 동갑인 다섯 살 된 딸아이가 있었는데 이사한지 보름쯤 되었을까. 밤에 잠자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었다.
괴이한 일이다.
이곳은 읍이라기보다 작은 마을이다. 원장 딸아이가 죽었다고 소문이 쫙 났다. 어떤 사람은 병원원장이 자택에서 죽어가는 딸에게 손 한번 쓰지 못했다고 수군거렸고, 어떤 사람은 귀신이 붙어있는 집이라고 하였다. 괴이한 일이다. 어찌 원장 딸이 맥없이 죽었을까?
그것도 선경과 나이가 똑같은 원장 딸이?
우연일까?
원장 딸 죽은 것이?
원장 딸이 선경과 동갑이라는 것도 우연일까?
모두들 하나같이 선경이가 죽는다고 예언한 것이 우연일까? 내가 그 집에 이사하였다면 선경이가 죽었을까? 아니면 선경이 대신 원장 딸이 죽은 걸까? 죽은 원장 딸은 병든 것도 몸이 약한 것도 아니다. 그 날도 잘 먹고 잘 놀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보니 죽어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원인도 모른 채

내영은 실뱀이 원장 딸을 죽인 원흉인 걸 감지한다. 그런데 실뱀은 왜? 아무런 죄도 원한도 없는 원장 딸을 죽였을까? 오랜 세월 내 자식을 죽이려 고도의 모사(謀事)를 꾸몄는데 그 음모가 하루아침에 물거품 된 원통함에 분통이 터져 화풀이 한 걸까? 선경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씨이기에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걸까? 장차 선경이가 만주벌판을 되찾는 여왕이래도 된단 말인가. 지구를 뒤집어 업고 우주를 주무르는 경천동지할 씨를 잉태할 태(胎) 란 말인가. 지구를 통일할 예수가 재림하실 태를 가졌나? 그래서 귀신은 그 태(胎) 을 낳은 나를 일평생 추적하여 죽이려 음모를 꾸민 걸까?  어찌하여 사단의 상징인 실뱀은 나의 딸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다 실패하자 원장 딸을 잡아먹었을까? 조그마한 실뱀의 힘이 그 정도라면 어미 뱀이나 에비 뱀, 그보다 큰 뱀의 힘은 얼마나 강할까?

용의 힘은?

나는 그 일을 체험함으로 사단인 용의 힘을 가늠해보고 몸서리쳤다. 조그마한 실뱀의 능력이 그 정도라면 용의 힘은 얼마나 강할까? 생각하면 소름이 오싹하다. 나는 그 일을 체험함으로 사단은 앞날을 미리 예지하여 음흉한 구멍을 파놓고 인간을 유인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절대자인 하나님에게 마저 도전장을 내었던 사단의 힘을 인간이 어찌 가늠할까.

기도의 힘이었을까? 실뱀을 잡은 후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간절한 기도 후 잡은 실뱀으로 일평생 추적하던 모든 귀신들이 사라진 줄 알았다. 강아지에게도 어미가 있고 아가에게도 엄마가 있듯 실뱀에게도 어미 뱀이 있는 줄은 모르고

무주에서 서북쪽으로 사 킬로의 대차리라는 오지마을.
산과 강 들녘이 병풍처럼 둘러져 백여 호가 올망졸망 그려있는 첩첩 산골에 지용이라는 불혹을 넘긴 떠꺼머리 노총각이 외삼촌 부부를 모시며 산다. 지용은 중학교를 나오긴 했으나 한글은 모른다. 지용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한글은 모르지만 그러나 지용은 전화 돌리는 것은 안다.
그때 나는 외삼촌의 헌 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주고 있었다.
집이 마무리 되어갈 때 외숙모가 외숙모 동생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뒤 없는 전차처럼 두서없는 이야기로 입에 침을 튀기던 외숙모는 동생의 교통사고 보상금을 표현하려다 말을 뚝 끊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얼핏 외숙모를 바라보니 금붕어가 물을 먹듯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후유 하곤 한숨을 쉬더니 입맛을 쩝쩝거린다. 두 눈은 황소처럼 끔벅거리고 입가엔 거품이 버글거린다. 아마도 무엇인가를 말하려는데 말문이 터지지 앉는 모양이다. 그렇게 입만 벙긋거리며 쩝쩝거리던 외숙모가 두 팔을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리며 하늘을 바라보다가 두 손을 휘휘 저으며
“억...억...억이 열 개야 억이 열개 그렇게 돈을 많이 받았어.”
그러면서 몸을 부르르 떨며 숨을 헐떡거렸다.
한번은 만 원권으로 이천만원의 건축비를 외숙모에게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튿날 같더니 외숙모와외삼촌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싸움의 내용인즉 외숙모가 백만 원의 돈을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 바람피우고 주어다는 내용이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박장대소했다. 내가 전날 받은 이천만원의 액수를 외삼촌은 백만 원으로 표현한 것이고, 외삼촌은 외숙모가 백만 원의 돈을 바람피운 정부에게 주었다는 싸움이었다. 그러니까 외숙모는 돈의 최대 표현의 단어가 억이었고 외삼촌의 최대표현의 단어는 백만 원이다.

지용이네 집 뒤 작은 묘(墓) 등처럼 생긴 언덕엔 늙어 가는 꼬부랑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다. 어느 날 지용은 일하는 나에게
“형 어찌 저 은행나무는 은행이 안 열리지?”
“음, 그건 숫놈이 읍어서 그래, 자고로 사람이고 짐승이고 식물이고 간에 암놈에겐 숫놈이 있어서 비비적거려야 알을 낳는 거야.”
내 말에 지용은 어려웠던 수확 문제를 푼 수험생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쩐지......,도시의 가로수 은행나무는 키도 쬐끄만한게 은행이 대추나무 영걸리듯 열렸더만, 그건 남자가 있어서 그랬구나.“

그러한 지용의 엉덩이에 불길이 일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통일교를 통하여 지용이보다 십팔 세나 어린 꽃 각시가 읍내 교회에 와있기 때문이다. 꽃 각시가 은행나무처럼 알을 품으려면 교회에서 사 개월의 교육기간이 끝나야 한다. 사 개월을 참지 못한 지용 은 농사를 팽개치곤 교회를 쥐새끼 풀 방구리 드나들 듯 한다. 하루래도 색시를 안보면 안절부절 눈알을 뒤집어 까곤 식식거리는 모습은 암내난 소 바라보며 거품 품어대는 황소다.

이렇듯 자궁의 힘이 세단 말인가. 이렇듯 여자는 사내의 영혼을 잡아먹고 마비시킨단 말인가.

필리핀 색시는 예쁘고 몸매 또한 감자먹고 똥싼 것처럼 매끈한 것이 남자 간 빼 먹는 불여우 같다. 저런 색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도 합동결혼식에 참석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다. 문화적인 차이는 그렇다 해도 먹물 통에(대학에) 빠졌다 건져낸 여자가, 십팔 세의 나이차이와 한글도 모르는 노총각이라기 보단 중년 아저씨에게, 거기다가 중풍으로 반신불수 된 할아버지를 모시고 첩첩산골에서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번은 닷새 만에 한번 장이 서는 읍내 시장에서 그들이 두 손을 꼭 잡고 장 구경을 나왔는데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풍경에 녹아 색시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라고 수표를 한 장 주었는데 지용이 색시는 나만 보면 방글방글 인사한다. 내가 가끔 지용에게 색시의 안부를 물으면 지용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한다. 나에게 색시를 빼앗길까 의심받는 듯 하여 서글프다. 내가 사는 집은 시장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삼층 빌라인데 장이서는 날 가끔 그들이 두 손을 꼬옥 잡고 시장구경 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에 꽃바람이 분다.

그렇게 어께를 쭉 펴고 고개가 뻣뻣했던 지용의 어께가 요즘엔 푸성귀처럼 축 처져버렸다. 일평생 샘물하나 파보지 못한 농촌 총각이 배추 뽑고 무 팔아 데려온 꽃 각시와 새살림 얼마 후, 꽃 각시가 그만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개주[도망] 가버린 것이다. 나는 어께가 축 처져 혼이 빠진 퀭한 눈을 한 지용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젊은 여자는 도시로 다 빼앗겨 버린......,할망구만 득실거리는 이 오지 산골에서 이제지용은 영원히 여자의 보물 구경은 못할 거다. 그리되면 지용이도 나처럼 자궁이 엉덩이에 달렸는지 장딴지에 붙었는지 망각하게 될 거다.

“내 아들 내놔 내 아들, 이놈아 내 아들 내놔 내 아들.”
외숙모집을 지어주고 돌아와 녹초가 된 몸으로 잠이 들락 말랑 하는데 들리는 여자의 소리였다.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다.
환청을 들었나?
나는 요즘 일이 힘들어 환청이 들린 줄 알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내 아들 내놔 내 아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벌컥 열고 거실로 나가보니 서른쯤 된 여인이 거실 바닥에 앉았다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여인의 눈가엔 요사한 기운이 감돈다. 여인은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하고 낭창낭창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나를 멀거니 바라보던 여인이 갑자기 까르르 웃는다. 소름이 오싹 돋는 웃음소리다. 웃음소리는 뾰족한 송곳으로 양철지붕을 벅벅 긁는 것처럼 카랑카랑 울린다. 한동안 요사를 떨던 여인이 웃음을 뚝 멈추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이놈. 네가 내 아들을 데려가? 이놈.”
그렇게 말하더니 까르르거리며 거실바닥을 뒹굴뒹굴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이 여자가 미쳤나?
나는 여인을 바라보다 눈을 떴다.

괴이한 꿈이다.
실뱀을 잡았는데 무슨 불길한 징조일까? 원귀는 무엇이 좋아 온몸을 쥐어짜듯 웃으며 요사를 떨었을까? 아이말대로 동자귀와 어미귀가 이사 왔나? 왠지 모른 불길함에 가슴을 졸이던 나는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얼른 컴퓨터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곤 주식 창을 열었다.
“악!”
나는 별안간 의자에 벌렁 떨어져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입에선 개 거품이 퍽퍽 쏟아져 나왔다.

나에겐 이사 온 후에도 상당한 돈이 남아 있었다. 오년간의 재판 끝에 승소하여 법정이자에다 인지 대 소송비 까지 받으니 액수가 상당했다. 법정 이자가 한두 푼인가. 이십오 프로(25%)다. 그런데 추석 때 서울 사는 동생이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주식에다 투자하려고 동생에게 물었더니 대뜸 “형 주식은 아예 생각 마. 집안 말아먹는 지름길이야.” 라고 쌀쌀하게 말하기에 더 이상 물어보기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은행에 넣어보아야 이자도 몇 푼 안 되기에 갑을 이라는 주식을 샀다. 동생이 돈번 종목은 비상장주식 이었는데 그때 나는 비상장주식과 상장주식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거래소에서 거래하는 주식이 상장 주식이고 상장하지 않은 주식을 제3시장이나 개인끼리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것이 비상장주식이지만, 그때 나는 정말이지 주식은 쥐뿔도 몰랐다. 다만 종합 주가지수가 떨어졌다고 생각되어 경기가 회복되면 주식이 오른다고 생각했다.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더라고 낙 폭 큰 종목이 크게 상승하여 은행 이자보다 이익이 된다고 믿었다. 갑을은 한때 이만 구천원대를 호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육백 원에서 칠백 원(600-700원) 사이에 매매되고 있기에 저평가 되었다고 생각되어 선택한 종목이다. 그런데 외숙모집을 지어준다고 여러 날 신경 쓰지 못하다가 원귀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식 창을 열어보니 갑을이란 주식은 매매가 정지되어 있었다. 이유는 <자본 잠식으로 인한 감사의견거절로 상장폐지.> 라고 되어있었다. 사월칠일부터 사월십오일까지 정리매매한다고 적혀있었다. 강화된 증권 법에 따라 처음 적용된 사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자본잠식, 상장폐지, 정리매매, 감사의견거절이라는 증권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다른 종목이 상장폐지 되어 수천 원씩 하던 주식이 5-10원에 매매되는 것을 보아왔을 뿐이다. 그러니까 은행에서 빌린 돈이 자본보다 많아 일주일간 정리매매 한 다음 주식시장에서 퇴출된다는 말이다.
휴지조각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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