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갑을이 부도나던 시기의 실화수기 제2화 - 갑을주주동호회, 소액주주 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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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이 부도나던 시기의 실화 수기 제2화

불새 씀

숨이 헉 막힌다. 가슴에 무엇인가 짓누르는 거 같다. 머릿속이 윙윙거린다. 천정도 빙글빙글 돈다. 나는 번개처럼 일어나 밖으로 내달린다. 그리곤 한 되 짜리 소주를 사서 돌아와 그라스에 따라 벌컥 벌컥 들이킨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다가 방바닥에 헤딩하듯 처박는다. 번개 불이 번쩍거리며 벼락장군이 요동친다. “쿵쿵쿵” 방바닥 울리는 소리가 방안가득 울린다. “으으 으 으” 입에선 기괴한 신음이 나온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안방 문을 열고 동자귀와 어미귀가 이사 왔다던 방으로 뛰어간다. 나는 무서운 눈으로 방안을 휘두른다. 천정에서부터 방 구석구석 진열장 틈새까지 세세히 살핀다. 이집이 자기들 집이라고 이사 왔다던 동자귀와 어미 귀신을 찾아내 초전박살내기 위해서다.
“이놈의 귀신아 나와라. 나와서 한번 붙어보자. 이 염병헐놈의 귀신아. 나오란 말여.”
나는 정신병자처럼 중얼거리며 두 눈을 희번덕거린다.
“이것들이 어데루 도망갔어. 나오란 말여. 내가죽던 니가죽던 해보잔말여. 쌍놈의 귀신아. 얼렁 나와.”
무서운 눈으로 방안을 휘돌던 나는 방문을 꽝 닫고 보일러가 붙어있는 방으로 뛰어간다. 하지만 그곳에도 귀신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식식거리며 두 눈을 뒤집어 까곤 숨을 벌렁거리다가 거실로 나온다. 내 눈에는 독기와 살기가 번쩍거린다. 입에는 하얀 거품이 버그르르 거린다. 번쩍거리며 독기 도는 내 눈빛은 거실 여기저기를 휘돌지만 귀신이 숨어있는 곳은 찾을 수 없다. 나는 귀신이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목을 잡고 패대기치리라 몸을 부르르 떤다. 나는 이방 저 방 시계추처럼 오고가며 귀신을 찾다 지쳐 현관 옆방에서 쥐약 먹고 죽어가는 개처럼 뻐드러진다. 동자귀가 이사 왔다고 말하던 방이다. 그곳에 잠들면 귀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꽝꽝 꽝”
나는 현관문 깨지는 소리에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야이. 머하니? 어쩜 그리 꼼짝 하덜안혀? 아이고 야가 우디 아픈가?”
집 지어준 외숙모다.
“야이. 우디 아프냐? 너 왜 그려?”
“아냐. 술을 나수 먹었드니만 그려.”
“아이고 야. 술좀 작작 먹어. 돈 받아가야지. 하두 안와서 내가 돈 가져왔다. 벌써 몇 칠 째야.”
외숙모는 파란색 보자기로 배를 칭칭 동여맨 끈을 푼다. 그리곤 보자기 속에서 공사잔금을 꺼내놓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주일동안 술을 퍼마신 모양이다. 일주일 동안 술을 퍼먹고도 죽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참 끈질긴 생명이라고 생각하며 컴퓨터를 커보니 주식은 오원에 매도물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술만 퍼먹덜 말고 집에도 가보고 그래라. 음마도 아프다면서, 하긴 느그 음마 씅질이 보통이래야 말이지. 느 음마 비위 맞추는 사람 시상엔 읍쓸껴.”
그러면서 외숙모는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망설이더니
“오직했으면 느그 작은외숙모가 양잿물을 마셔쓰까. 니 팔자가 아무래도 느그 음마땜시 그런건 아닌갑따. 잉. 내 암만 생각 혀도 니 팔자를 보면 영 그런 생각이 든당게.”
그러면서 외숙모는 무슨 말인지 중얼거린다. 나는 외숙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며칠 동안 술로 찌들어 속도 쓰리고 몸도 안 좋아 얼른 누워 있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외숙모가 중얼거리는 말속엔 아기를 배속에 넣고 약을 먹었다는 둥, 아기를 낳았는데 죽어 있었다는 둥 하며 횡설수설하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외숙모, 그게 무슨 말이여? 아기가 죽다니? 양잿물이라니?”
“모르냐? 에이그 말도 마라. 느그 엄마가 거시기.....,”

나의 어머니등살에 산달을 앞둔 작은 외숙모가 양잿물을 먹고 자살한 원통한 죽음이었다. 나는 작은 외숙모가 죽지직전 죽은 아들을 낳았다는 비밀을 듣고 실뱀의 정체를 알았다. 또한 일평생 추적 령이 날 추적한 의문도 비로소 풀 수 있었다.

나를 추적한 귀신은 외숙모 귀신이 아니다. 사단이 섬김을 받고 싶어 원귀흉내 내는 것뿐이다.

나는 있는 돈 모은 다음 큰외숙모에게 받은 공사 금을 보태고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 주식공부를 시작했다. 억울하여 살지 못한다. 어떻게 받은 돈인데 한방에 맞아죽나.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다시 한번 붙어보자. 내가 주식은 쥐뿔도 몰라 쌍코피 터졌지만 배우면 된다. 그렇게 피 칼 갈며 주식 공부를 하다보니 M&A 되는 기업의주식이 M&A 발표나면 연속 삼 사 일간 상한가 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주식은 M&A 되려다 무산되면 몇 칠 간 하한가로 밀린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익이 남는 만큼 위험부담도 있다는 말이다.

주식은 자기돈 백만 원이면 미수금까지 이백오십 만원의 주식을 살수 있다. 삼일 안에 그 돈을 갚아야 한다. 돈을 갚지 않으면 증권사에서 강제로 보유한 주식을 매도한다. 그러니까 거래소시장에서 백만 원의 돈으로 미수처서 산 주식이 사일 간 상한가 친다면 이백팔십 오 만원이 되니 거의 삼백프로의 수익이다.

나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M&A 가능성 있는 주식을 찾기 시작한다. 한방 맞았으니 한방 때려야 한다. 기필코 한방 날려 원수 갚자. 앙 다문 이빨이 아파온다. 해보자. 이대론 죽을 수 없다. 어떻게 받은 돈인가. 피고름 나는 아픔 속에 TV 팔고, 냉장고 팔고, 세탁기 팔고, 자동차 까지 팔아 재판 다니며 승소한 돈이다. 다섯 토막으로 골절된 다리뼈에서 먹지 못해 액이 나오지 않는 기막힌 일까지 겪으며 받아낸 돈이다. 목발을 집고 쩔뚝거리며 재판하여 받아낸 돈이다. 이 돈은 나의 희망이고 생명 줄이다. 이돈 마저 날리면 노숙자 되어야 한다. 선경이 만나는 꿈도, 다시 한번 꽃 각시 얻어 꽃방 살이 하듯 바둑판을 차려볼 욕망도 접어야한다.
나는 이빨을 사려 물고 M&A 가능성 있는 주식을 찾았다. 나는 M&A 가 무엇을 뜻하는지 자세히 모른다. 다만 회사가 팔린다는 것만 알뿐, 어째 되었건 주가만 오르면 되고 나는 본전만 찾으면 된다. 나는 M&A 가능성 있는 주식이라고 생각되는 종목을 찾아 살까말까 기회를 노린다. 샀다가 M&A 가 무산되면 이ꡐ삼 일간 하한가로 추락한다.
살까말까.
블랙홀이냐 화이트홀이냐. 죽음이냐 삶이냐. 이승이냐 저승이냐.
망설이던 나는 있는 돈 모두 털고 미수(원금의 2.5배만큼 외상으로 사는 것) 처서 주식을 몽땅 사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그날 밤 술을 한잔 걸치고 돌아와 인터넷 신문사 사이트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oo회사 M&A 성사확정. 대주주 소액주주 균등하게30:1감자하기로]
“으햐 캬캬캬캬”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쾌재의 희열과 감동이었다. 돈 버는 것보다 기쁜 일은 자신이 선택한 종목의 주가가 오르면 느끼는 희열이다. 자신이 고심하고 판단하여 선택한 종목이 성공하였다는 성취감, 그래서 느끼는 희열이란 오르가즘과 버금가는 벅찬 일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알이 번쩍거린다. 가슴이 벅차올라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거 같다. 나는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불러보다가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린다.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 가만히 있을 수없다. 코는 벌렁거리며 킁킁거린다. 어께 춤이 저절로 덩실거린다. M&A 가확정되었으니 삼ꡐ사 일간 상종가 칠 것은 분명하다. 그리되면 본전은 건진다. 기왕 이 길로 들어섰으니 전문가로 나서자. 에널리스트가 되자. 펀드매니저가 되자.

“무학자 미장이 펀드매니저.”

얼마나 멎진 이름인가. 그게 머 만이 배운 놈들만 해 처먹는 직업이 간디? 왕후장상 씨가 따로 있어? 힘 있고 깡 있고 머리 좋으면 되는 거지. 나라고 못 할게 머가 있어. 나도 할 수 있어. 여기서 오백억쯤 만들어 미국시장에 가자. 미국에 가서 미국 놈들 돈을 따먹자. 그놈들이 우리나라에서 주식으로 돈을 쓸어간다는데 미국에 가서 원수 갚자. 에이그 지지리도 못난 놈들 우찌 코큰놈들 하나 이기지 못하고 날마담 돈을 깨물어 먹능겨? 하지만 이제 내가 원수 갚아 줄팅게 지둘려 잉. 그려. 큰 고기는 큰물에서 논 다더라고. 코딱지만한 조선 땅엔 내가 놀 물이 적어. 사람이란 자고로 큰물에서 놀아야혀. 큰물에 가서 놀자. 난 원래 주식하기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그런데 막노동판에 나뒹굴다보니 그걸 개발하지 못했던 거야. 똥구멍에다 박을 거 눈구멍에다 바가바. 당연히 눈먼 봉사되지. 주식하기 위하여 태어난 천재가 노가다나 하고 있으니 요 모양 요 꼴 된 거야. 전문 스킬 퍼가 되자. 보좌관도 몇 명 쓰고 사무실도 하나갖자. 컴퓨터도 여러 대 놓고 전문 주식 쟁이가 되는 거야.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구. 히히 그리되면 나는 완전히 먹물 통 속에 들어가는 거잔아. 만이 배운 놈들만 들어가는 먹물 통. 흐흐흐, 거참, 먹물 통 속에 들어가 몸 당구는 거 별거 아니시, 잉. 나는 혼자 정신병자처럼 흐흐흐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런데 감자가 무얼까? 감자라......,암튼 감자는 먹는 것이니 좋은걸 거야. 이름도 멋지잖아. 감자.’ 마음이 조금 꺼림직 했지만 M&A 된다고 하였으니 삼사일 간 상종가 칠 것은 분명하다. “으흐흐흐.” 내입에선 승리의 웃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다.
“이놈. 이 사단의 종자야. 니가 아무리 날 직이려해도 안 죽는다. 바라 귀신아. 흐흐흐 내가 드디어 승리했다. 승리했단 말이다. 흐흐흐.”
“으흐흐흐, 이놈의 귀신들, 느네들이 아무리 그래 바라. 난 기필코 성공하고 만다. 으흐흐흐......,”
나는 그렇게 미친놈처럼 중얼중얼 히죽이 웃으며 밤새워 천정을 바라보다가 새벽녘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어와 보일러가 붙어있는 작은방에 누워계셨다.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다. 완전히 거지다. 아버지는 거지같은 몰골로 작은방에서 볕 집을 덥고 주무시고 계셨다. “아버지. 이 방엔 추운데요. 제방에서 주무시지요.” 내말에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한다. 나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아버지를 덮었다. 그리곤 나도 아버지 옆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꿈이었다.

주식은 아침 여덟시부터 동시호가로 시작한다. (현제는 법이 바뀌어 여덟시 십분이다.) 그러니까 살 사람과 팔 사람이 여덟시부터 주문 내어 아홉시 정각이 될 때 체결되는 가격이 그날의 시초가다.
그런데 괴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찍부터 주식 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하한가에 매도물량이 쌓여있었다.
“이놈들 사기처서 주식사려고 흐흐흐 안 속는다.”
허수주문이라는 것이 있다. 주식을 저가에 매집하기 위해 주식을 저가에 몽땅 내놓는다. 주식은 심리전이기 때문에 저가에 나온 매물이 많으면 덩달아 주식을 팔려고 안달한다. 비싸게 매도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세력들이 주문을 고가에 내어 가격을 올린 후 개미들이 붙으면 물량 털고나간다. 나는 주식 창에 쌓여있는 매물을 보고 큰손들이 주식을 저가에 매집하려고 장난하는지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갈수록 점점 하한가에 매도 물량이 쌓인다.
“이상한데? 어째 이러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량은 쌓이고 내 가슴도 더욱 쿵쾅거린다. 아홉시가 땡 하고 쳤지만 하한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매물은 단 한주도 팔리지 않았다.
“악!”
나는 또다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러덩 떨어져 도살장에서 머리를 맞고 나자빠진 돼지처럼 뻐드러졌다.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꽃 각시를 잃고 파김치처럼 축 처진 몰골로 혼이 빠진 퀭한 눈을 한 지용의 얼굴이 아롱거렸다.

사일 동안 그 주식은 하한가를 쳤다. 감자라는 것이 악제도 최악 중에 최악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그러니까 30:1감자란 삼천 원짜리 주식이 삼십분의 일인 백 원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는 단 두 방의 자본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총칼하나 써보지 못하고......,

유명작가가도 짜 맞추기 어려운 기묘한 연극이다.
단 두 방의 자본에 총을 맞고 지난 세월 피고름 짜내며 투쟁하여 받아낸 공사 금을 떡 쓸어 업은 것이다.
사단의 음모는 여기서 멈추지 앉는다. 사단이 누군가. 지구를 지배하는 마왕 아닌가. 이미 사단은 나의 잡초 같은 생명력을 꿰뚫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내목이 비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공사금을 받아야 할 호텔 사장과 신용협동조합측은 아삼육으로 한통속이다. 나는 그때 신협에 채무가 있었는데 나의 국교 동창이고 친구였던 호텔 사장이 나에게 변제할 채권을 신협에 대위변제한다는 각서를 써주어, 압류한 호텔사장의 부동산을 해지한 다음, 경찰서와 노동청에 진정한 사건을 취하하고 민사소송까지 취하해 주었다. 그런데 그자가 대위변제한다는 채권을 변제하지 않아 나는 졸지에 신용불량이 되었고, 그 바람에 농가부채 경감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농협에선 신협의 채권을 변제하여야 농가부채 경감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채권을 양수한 호텔사장이 채무를 변제하지 않으니 원금에다 연체이자까지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경찰서와 노동청에 재 고소하려 했지만 일사부조리 원칙에 의거 재고소가 안된다고 한다. 이미 그자는 논밭까지 경매 처분 되도록 모사를 꾸민 후, 대전의 무서운 깡패들을 시켜 경매가 유찰되도록 한 다음, 낙찰가가 턱없이 낮아졌을 때 동생을 시켜 낙찰 받아 모든 채권을 꿀꺽한 것이다.

광풍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독 오른 살모사처럼 마지막 목을 조이려 음모를 꾸민 사단은, 육년간 끌어온 [주] 희성개발과의 재판에서 재판관의 손까지 처 버리고 말았다.
부산의 [주] 대건 공영이 공사 금을 떼먹고 사업주와 사업목적이 동일한 [주] 희성개발이란 유령회사를 설립한 후 대건 공영의 재산을 유령회사로 옮겼는데, 유령회사를 상대로 소송하여 대법원까지 갔다가 패소하고 만 것이다.

소송비와 경비가 원금보다 더 들어간 재판이었다. 승소하기만 하면 이자와 소송비가 원금보다 세 배도 더 받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승소한 다음 이제까지 육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위자료 지급 청구의 소까지 할 수 있으니 회사가 죽던 내가죽던 양단간에 결판이 날 터인데, 사단은 그만 재판장의 손을 처 버리고 만 것이다. 하긴 그자들은 재판에 승소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몇 번이나 샀던가. 장장 여섯 번이다. 맨손으로 식칼하나 가지고 싸운 내가 초정밀 무기로 무장한 그 자들을 이길 확률은 사다트와 부시 아닌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보증을 선일이 있었는데 그자들 모두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모든 것이 죽사발 되어 도로아미타불 되고 만 것이다.

전장에 진 장수가 갈 곳이 어디인가.
할복이다.
패전유무다.
병원에서 속도 안 좋고 잠이 안와서 그러니 속 아픈 약과 함께 수면제를 처방하여 달라고 하였더니, 저녁에 복용하는 약봉지에 정품 수면제를 한 알 처방해 주었다. 나는 약방에서 수면제를 한 알씩 모으고 처방전에 들어있는 것까지 육십 여알을 모았다.

삶의 단절의 준비를 마친 나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요즘엔 유행처럼 번져 단속이 심하여 찾기 어렵다. 하지만 장정 열명이 도둑하나 지키지 못한다. 단속한다고 그게 가능한가. 일테면 “인생 상담” 이라든지. “살고 싶은 사람들.” 이라든지, “삶의 아픔.” 같은 이름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운영되고 있다.

얼마 만에 사이트를 하나 찾아냈다. 동지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하루 만에 일곱 명의 동반자에게서 멜이 왔다. 십대가 두 명, 이십대가 세 명, 삼십대가 두 명, 사십대가 한명이었다.

답장 온 내용 중 몇 개를 한글자도 바꾸지 않고 옮긴다.

답장 1.
형님 앞에서 못할 말이지만 허나 저도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지만 겪을 일은 다 겪어봤습니다. 그리고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장소는 많다 고하시는데, 산속? 목매는 거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도 한번 시도해 봤거든여 도조히 못해먹겠더라구여. 여관? 여관에서도 수면제 먹고 해봤습니다. 허나 주인이 신고했더군 여 병원에서 삼일 푹잤습니다 빌딩? 올라가봤지만 진짜 강심장 아니면 힘듭니다. 그래서 생각해놓게 수면제 먹고 배기로 가는겁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배기로갔구여 확실하니깐......무주라고 하셨나여? 거기가 어디쯤 있는거져? 무주리조트하고 같은 건가여?

아라비아 씀.

답장 2.
죽는데 뭐가 필요하나여…….오로지 죽을 라는 용기만 있음 되지…….허나 그거아세여? 죽고 싶은데…….너무죽고싶은데 뒤따르는 고통이 두려워 편하게 죽고 싶은 제가 생각해도 한심스럽습니다. 나는 서른이 막 넘었습니다. 기왕 죽을 바에는 장기나 팔아서 놀다가 죽읍시다. 눈알도 좋고, 신장이나 골수같은거면 어떻습니까. 죽어가며 존일도 하는거구여.
연락 주십시오.

올리버.

답장 3.
전 열일곱 살 남자 에여, 연락82주세여, 장난 절대아니에여

박규형

답장 4.
나도 지금 심정으론 죽구싶어서 이런 맬씀니다. 나도 마니 고민하구 있었는데 이제야. 그쪽 글을 읽고 확실히 내가 살 필요가 없다 는걸 알거갔네여. 동반자살 나도 끼워주세염. 나도 죽구싶어여. 나는 십대이어요.
답글 기달릴께염

작은 물결.

놀라운 일이다. 이 땅에 이토록 병든 영혼이 많다니......,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 걸었던 인고가 있었거늘 이제 겨우 십대의 나이에 삶을 포기하다니......,막상 동반하자는 멜을 받고 보니 으스스하다. 삼십대와 사십대는 고해의 바다에 헤엄친 나이라지만 십대와 이십대는 사물의 이치를 사고하기엔 어리다. 내가하는 행위는 사람을 죽이는 선동이다. 내 영혼하나 간수하지 못한 패배자가 우주보다 고귀하고 소중한 타인의 운명을 재촉할 권언(勸言) 이 있는가. 하나의 생명이 소멸됨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일이다. 내 생명을 소멸하는 일도 구천 연옥을 헤매는 범죄다. 그런데 하물며......,
나는 그 사이트에 올린 글을 삭제하였다.

자살귀.
나는 사신(死神) 의 하인이다. 자살귀의 노예다. 내 영혼은 소멸되어 거친 광야에 날리는 흙먼지 될 뿐이다. 죽음의 화신인 액체를 술잔에 담고 결행의 깃발을 들어보지만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외숙모 귀신 흉내 내는 추적령의 추적을 당할 때부터 삶의 단절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삶을 단절해야 할 시기는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이다. 그래야만 귀신의 통수가 딱 맞는다. 출산을 앞둔 외숙모가 자살하였을 때 뱃속의 아들이 죽어서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자살하는 걸 나의 어머니가 보고 돌아가셔야 외숙모에게 한 어머니의 행동이 피장파장 된다. 그래야 사단은 외숙모의 원수를 갚았다고 믿게 하여 귀신을 섬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 사단은 초장(初場) 부 터 전략을 짜고 나을 죽이기 위한 전담반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나에게 자살귀를 붙여 숨통을 조이려고 내 가정을 망쳤고 자식하나 키우지 못하도록 고도의 모사를 꾸몄다. 화양귀을 보내 직격탄을 퍼부었고 무당귀를 붙여 확인 사살한 것이다. 그토록 기묘한 간교(奸巧)를 꾸몄는데 삼차원의 인간이 사차원의 영체를 능가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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